Friday, September 28, 2007

Dynamic Life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 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거지

그런거지. 음음음 어허허~

산다는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은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게 덤이잖소



밤새 내린 비로 갑자기 추워진 날, 오후에 밖에 나가 담배를 피다 문득 흥얼거리게됐다.

아주 최고 낙관주의적 노래라고 해야 할까?

나는 가끔 나의 기술이 뛰어난줄 착각하고 있다.

이른바, Engineer로서, 영업, 기획, 관리등의 사람들은 나의 수준높은 기술을 이해 못하고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고 착가할때가 있었다.

나는 나름 열심히 공부했었고, 남들과 달리, 엄혹한상황에서도 늘 잘해왔고, 나의 경험과 노하우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오만한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내 일정에 맞게, 내 의도에 맞게 휘둘렀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컴퓨터는 답이 있는 대상이다. 단지 내가 모를뿐, 난 답이 있는 대상을 가지고 일하는것이다.

하지만, 영업, 기획, 관리 등의 분야에서는 정말 답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마케팅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낼까 고민하며 기획을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팀웍과 일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관리를 한다.

답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일을 해왔던 사람에게 난 아주 미천한 지식으로, 나의 일에 근접하지 못하게 했었던게 아닌가 한다.

나름 잘 났다고 생각했다. 사람 파악도 잘 하고, 사람도 잘 다루고, 나름 카리스마도 있다고 생각했다. ㅋ

그러나 결국 내 자신 하나 추스리지 못하는 나인가 보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

Saturday, September 22, 2007

하 고 싶 은 거 있 으 면 하 고 살 아



유교적 사상이 투철한 할아버지 세대와 서양문물의 개입으로 신세대가된 아이들 틈에서 지루한 쳇바퀴 굴리듯 살아가는 이시대 가장의 이야기!

나름 대학에서 음악으로 열정을 불태웠으나, 가장이 되면서 돈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인해 전혀 즐겁지 않은 생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그야말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려는 뮤지션의 이야기!

끝이 없이 벌고 벌어서 처자식 뒷바라지와 노후까지 생각해야 하는 이들에게 음악은 곧 해방구였고, 삶의 낛이며 즐거움이었다.

사실, 영화이기에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이해 못하고 현실적 문제를 고스란히 더 책임지게 되는 색시입장에서는 정말 복창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남자는 그렇게 해방구를 찾았으나, 또 한편으로는 더 크게 불려진 돈에 직결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여성의 몫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그후 조개구이가 얼마나 잘됐을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여성의 삶은 그저 남편이 즐거워 하는 모습에 잠시 응원을 하고 기뻐했을지 모르나, 정작 그들의 해방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다. 이건 단지 나의 생각일뿐, 그리고 이것은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하고 싶은거 있으면 하고 살아" 이다!

고등학교때 부터 드럼을 쳐온 나는, 대학교에가서도 밴드를 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틈만 나면 연주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아주 미약한 취미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동아리 선후배 동기들과 얘기해보면 다시 악기를 들고 싶어하는 욕심이 모두들 있다. 나 역시 제대로 된 합주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아주 간절하다.

이 영화는 적당히 식어진 내 가슴에 아주 제대로 불을 지폈다.

이들이 다시 모여서 처음 연습을 하던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어찌나 웃긴지 모른다! 우리가 연습할때랑 똑같다.

"넌 흥분하면 빨라지잖아!" 푸하하! 딱 나다!

늘 그랬는데, 신나서 연주하게 되면 늘 감정을 조절못하고 손이 빨라져서 기타와 건반 그리고 노래반 아이들을 힘들게 했는데 ㅋㅋ

그때 연습하면서 그토록 싸웠던 것들이 이렇게 아주 큰 웃음으로 돌아올지 몰랐다!

나 다시 음악한다. 기회나 여건은 내가 만든다.

색시에게 하는 아주 철없는 반항 "하고 싶은거 있으면 하고 살아" 이건 색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인생을 즐겁게 살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사막처럼 살고 있는, 지루한 일상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다!

즐겁게 살으라!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아라!

돈은 변명이다.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마도 직장인 밴드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아주 많아질듯 하다. ㅋ

그 희열을 잊지 못한다.

합주를 위해 개인연습을 하고, 곡을 맞추면서 싸우고, 조금씩 맞아가게 되면서 한곡을 완성했을때의 그 희열! 그리고 카타르시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는 그 기쁨을 다시 느껴봐야 겠다!

나 이제 음악한다.

정우야, 너 나랑 같이 음악하려면 연습 조낸 해야 한다. 각오하라!

Wednesday, September 19, 2007

(A ∧ B) => C,
where (A => ¬B) and (B => ¬A)

A 이면 B 가 아니고, B 이면 A 가 아니다.

A 와 B 가 동시에 참일 경우는 없으므로, C 는 성립되지 않는다.

Catch 22 Logic 은 그럴듯해 보이나, 이분법적인 흑백논리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에서 누구나 범하기 쉬운 오류를 가지고 있다.

A 와 B 간의 상관관계를 추정하는것 부터가 오류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되지 않은 가정은, 그럴사한 결론을 도출해 듣는이를 혹하게 만들기 쉽다.

인간관계의 해석은 그리 단순한게 아니다.

그러지 말아라.

Monday, September 17, 2007

나도 국가유공자?

'군 복무중 탈모' 국가 유공자 해당
서울행정법원 판결

군 복무기간 스테레스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지는 탈모증세가 진행됐다면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2003년 5월 입대한 박모(당시 21세)씨는 다음해 1월부터 머리에 부분적인 탈모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됐다. 가족력도 없었고 입대 전에는 탈모 증세도 없었다.

수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박씨의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빠졌으며 2004년 10월에 국군통합병원에 입원, 진단을 판은 결과 머리 전체의 털이 빠지는 전두탈모증으로 판정됐다. 이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끝내 입대 2년만인 2005년 5월 의병전역을 했다.

박씨는 전역한 뒤 서울지방보훈청에 복무 중 스트레스 등으로 전두탈모증이 생겼다며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다.

그러나 보훈청은 박씨의 증세가 군 생활과 무관하게 T림프구 자가면역기전에 의해 발병한 것이며 제대 후 머리카락이 상당 부분 다시 돋아난 점 등을 들어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신동승 부장판사)는 박씨가 서울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피고는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스트레스가 원형탈모증의 발생 원인은 아니지만 악화 요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등의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면 원고의 전두탈모증은 군 생활 중의 교육훈련과 직무수행에 따른 스트레스에 의해 발병했거나 스트레스가 탈모증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승소 이유를 설명했다.




원래 내 머리엔 땜빵하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머리가지고 장난쳐 본적이 없다. 이를 테면, 파마, 무스, 스프레이 등등등... 때문에 난 아주 곱고 부드러우며 윤기나는 여성도 부러워할 머리결의 소유자였다.

어느날 휴가를 나와, 학교에 갔었는데, 당시 새내기이던 이모양이 내 뒤통수를 보더니,

"오빠 머리에 땜빵있네요?" 라고 하였다.

내가 알기론 내 머리엔 땜빵따윈 없는데?

원형 탈모증 초기때는 그 심각성을 미처 몰랐고, 그냥 흘려 들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내 뒤통수엔 500원 짜리 동전의 약 1.5배 만한 구멍이 무려 2개나 생겼었다.

곧 나는 벽제에 있는 국군통합병원으로 일주일에 2번씩 통원치료를 받게 됐다.

구멍하나에 주사를 3방씩 맞았고, 약도 복용했다.

그러나 머리는 다시 날 생각을 안하고 구멍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같은날 의정부로 입대한 자대 동기 재만이가 있었다.

그 친구도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백반증에 걸려서 나와 함께 일주일에 2번씩 통원치료를 받았다.

그 친구나 나나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고참들은 니깟것들이 스트레스 받을일이 뭐 있냐며, 더욱 갈궜었다.

나는 결국 끝까지 머리가 나지 않았고, 내 사수가 제대한 뒤에야 원형탈모가 완치되어 새머리가 솓았었다.

그 사수... 지금은 뭐하고 사는지 참 궁금하다.

내가 당했던 사례 몇가지를 들어보자면...
1.
파일정리를 해놓으라고 했는데, 그당시 Windows98 에서 난 파일 복사와 같은 일을 할줄 몰랐다. 전산관련학과 출신이기에 전산병이 됐는데, 그런것도 못한다고 첫날 부터 맞았다.

2.
엑셀작업하다가 컴퓨터가 뻑갔는데, 그 상황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마우스를 한번 휘젓게 된다. 근데 나는 마우스 휘젓다가, "이 개새끼야! 마우스 돌리니까 리소스 더 먹잖아!" 라며 맞았다.

3.
행정부대다 보니, 전투체육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난 농구를 참 좋아했다. 사수는 주말에도 사무실에서 조낸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창 밖 멀리 농구장에서 농구하는 날 보고 불러서 가슴에 담배빵 놨다. 사실 이건 누구 말처럼 개념을 집에 놓고 와서 인데, 그래도 좀 심했다.
등등등... 참 힘든 군대 생활이었다.

대개 전산병, 행정병이라 하면 편할줄 아는데, 우리 부대는 행정부대였기 때문에 훈련 다 받고, 근무 다 나가고, 거기다가 야근을 거의 매일 같이 했다.

군대에서 최고는 일찍 자는것인데, 일찍 자는 날이 거의 없었고 늘 수면부족이었다.

물론 그래서 3학년 마치도록 파일 정리 하나 못하던 내가 컴퓨터를 배우고 제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받은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아직까지, 이 나라의 군인을 불쌍히 여기고 보고 있자면 한숨만 나오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군대... 예전에, 동원훈련 한번 가보았는데, 참 좋아진거 같긴 하다만, 철저한 계습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리라 생각이 된다.

문제는 군대내에서는 특히, 아랫것들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통로가 여전히 현저히 작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 후로, 지금까지도 신경을 쓰면 머리가 빠지는 그래서 지금은 숱이 많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나도 그럼 국가유공자인가?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후보상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개선하려는 노력을 좀 보여주면 좋을텐데...

내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얻은 가장 큰 정신병은 "곽"가를 아주 혐오한다는 것이다.

흔치 않은 곽가를 보면, 100% 편견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 곽가 아저씨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재만이도 생각난다. 스타일은 나랑 좀 다르지만, 서로 농구를 무지 좋아해서 친했고, 1:1 도 자주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인연도 없다. 2년동안 하루 종일 붙어서 함께 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인연은 부부도 힘들듯 하다.

보고 싶군 재만이...

아직도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키는 좀 컸는지...

언젠가 한번 신림역에서 우연히 만나고 명함 교환하고 조만간 보자 했었는데...

이 우울한 기사가 오래전 악몽과 몇명을 떠올리게 하는구나.

Saturday, September 15, 2007

서울/파주 나들이


지난 6월에 통세 사람들과 부산에 갔을때, 뽀름이 우리 일행을 위해서 하루 종일 멋진 부산 가이드를 해주었었다.

농구팬인 뽀름은, 이상민이 서울SK 로 옮기면서 서울SK 에서 하는 농구행사 참여차 후배랑 서울에 올라오게 됐는데, 부산가이드의 고마움도 표시할겸 뽀름이도 서울에서 놀아줄 사람이 나 밖에 없다고 하기도 하고 해서 같이 놀았다 ㅋ

같이온 정문(본명)이가 서울이 처음이라고 겸사 겸사 서울 구경도 하고, 또 뽀름이가 가보고 싶었던 나도 가보지 못한 헤이리를 다녀왔다.

말만 들어봤지 사실 가보고 싶었던 생각도 없었고, 또 어딘지도 모르고, 또 박물관 몇개 있는정도라고 생각했기에 크게 땡기지 않았지만, 가자니까 갔다 -_-;;..

헤이리를 갔다는 것 자체보다는 간만에 뽀름이 만나서 반가왔고, 또 하루만에 급친해진 정문이가 재밌었고, 또 20,000원 상당의 공연을 몰래 뒤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시원하게 드라이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근데 얘는 왜 하루만에 급친해진거지? ㅋㅋ

그리고 생각하지 않았던 프로방스라는 곳도 갔는데,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 하게 잘 꾸며놓은것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영어막을은 겉에서 그냥 찍고만 왔다.

서울이 처음이라는 정문을 위해 돌아오는 길에, 일산 호수 공원을 찍고, 상암경기장을 보여준뒤, 선유도를 한바퀴 돌고, 여의도에서 63빌딩도 보고 국회의상당도 보았다.

사실 나도 그간 유심히 보아오던 것들이 아닌데, 누구에게 소개(?)를 시켜준다 생각하니 기분이 뭔가 대단한걸 소개시켜주는듯 한것이 참 이상하더라.

난 서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일자리만 많다면, 저 멀리 지방이나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 서울이 처음이고, 서울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된다 하니, 왠지 더 좋은 더 많은것들을 보여줘야 할거 같은 이상한 부담감이 있어서 나름 노력을 해보았으나 흡족해 했으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뭐 좋았다고 말하니, 그냥 그런줄 안다.

무엇보다 멀리 살아서 소흘해 지기 쉬운 관계임에도 늘 잊지 않고 인사하고 연락해주는 뽀름이가 고맙다.

2002년 615 반주반의 인연이 참 고맙게도 오래도 가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드문 드문 생각나는데 연락할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한때는 늘 붙어 있으며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각자의 생활이 달라지면서 연락되지 않거나, 연락해도 거시기 한 사람들...

착하게도 뽀름하고는 꾸준히 연락이 되어 친하게 지내고 있는게 다행이고, 그렇지 않은 내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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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10, 2007

나이 거꾸로 먹기 상상

나도 고등학생일때 그렇게 빨랐을까?

서청 체육대회를 서울산업대에서 진행했다. 중간짬 시간에 고등학생들과 3:3 반코트 농구 한판을 했는데, 마음은 이미 막고 있으나,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고등학생들은 빛의 속도로 농구를 하고 있는듯 보였다.

그나마 학생들이 좀 설렁 설렁했기에, 간신히 질 수 있었다.

게임이 끝나고, 의장님이 나한테 얘기한다.

"전에는 10년만 젊어지고 싶었는데, 이제는 20년만 젊어지고 싶다."

"욕심이 과하십니다 -_-;;..."
누구나 이러한 말도 안되는 가능성도 없는 얼토않은 상상을 한다.

가능하지 않다는걸 당연히 알고 있으나, 그래도 상상하게 되는 꿈꾸게 되는 미련이 누구에게나 종종 혹은 가끔 있다.

글쎄... 내가 만일 돌아갈 수 있다면, 군대라는게 약간 걸리긴 하지만, 당연히 돌아가겠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들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난 그때 그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난 늘 내 가치관에 맞는 옳바른 판단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면 약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나의 삶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 단 한명만을 처음부터 만나 끝까지, 벽에 똥칠하며 손잡고 웃을 수 있었더라면 좋을텐데 라는 또 역시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본다.

다시 돌아가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테지만, 아예 선택할 일이 없이, 쭉 한방에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Friday, September 07, 2007

I ♡ JR

우리부서가 삼성동에 있는 회사에서, 종로에 있는 회사로 옮겼다.

이전 회사는 한동안 코스닥 시장을 시끄럽게 했던, 횡령 및 주가 조작으로 망신창이가 된 회사이고, 다행히 우리 부서의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다른 회사로 부서가 통째로 편입된 것인데,

그래서 종로로 왔다.

종로에서 일해본건 처음이다.

그간 종로에 왔어야 했던 이유는,

1. 극장이 많지 않던 중,고교 시절 영화를 보러 왔었다.

2. 큰건수가 있을때 마다 늘 데모하러 왔었다.

3. 낙원상가에 악기 구경 및 구매하러 왔었다.

즉, 나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청계천을 걸어본적도 없었던 건데, 이곳으로 오면서 청계천도 걸어보았다.

이모씨가 만들기 전에는 반대도 했었으나, 만들어 놓으니 좋다!

이곳으로 온지 이제 딱 일주일이 된건데,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아주 저렴하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밥 먹고 나서는 소화를 위해, 걸을 수 있는 청계천이 있고,

그 주위로는 조그만 이벤트 및 공연들이 있고, 맛나고 싼 커피들이 있다.

요즘엔 누구나 다 따라하는 금연건물인 덕분에, 22층에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핀단 이유로, 주위 청계천 한번 걸어주고, 앉아서 수다 떨다 들어가기도 하고...

일 완전 안하고 있다 -_-;;...

근데, 종로가 이렇게 놀기 좋은곳인지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먹을것, 볼것, 놀것이 참 많아서, 언제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종로가 좋아졌다!



메신저 대화명을 "I ♡ JR"로 해놓았더니, 모두들 언년이냐고 물어본다. -_-;;..

JR 은 종로라구요! "I ♡ NY"를 페러디 한것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