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WAR를 만들 당시 유일하게 나의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것은 그 효능을 실제로 알수 없는 비타500 이었다.
작업하면서, 인규와 원팀장님 등등과 회사앞 편의점에서 담배피며 자주 마셨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누가 내 머리를 신문지로 툭 친다.
피곤한 아침, 대번에 화가나서 봤는데, 인규였다.
월요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은 노랗게 떠서 한눈에도 몹시 피곤함이 좔좔 흐르고 있는걸 알 수 있다.
인규도 출근길이었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나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 회사 얘기를 하자니, 인규가 불편할거 같고, 내 얘기를 하자니 약올리는거 같고...
지난 금요일 원팀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그간 연락해도 너무 바빠서 제대로 응답도 못해주더니 먼저 전화가 와서 조금 의아했는데,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해서, 어제 강남역에서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한살 어리지만 개발 실력이 출중하여 내가 많이 배우기도 했고, 또 나하고 코드가 잘 맞아서 친했었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둔 뒤에, 많은일이 있었을텐데, 무엇보다 이틀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병원까지 실려갔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_-;;...
얼마나 무식하게 일을 했으면...
오랜만에 봐서 반가왔다.
그간 회사 얘기도 하고, 개인적인 얘기도 하고 앞으로 무슨일을 할까도 얘기하고...
아무튼 회사를 그만둔게 된것은 잘된일이라고 대번에 얘기해줬다.
원팀장님도 좋아한다.
이제 내 생활 좀 만들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해봤으니 후회는 없다고 한다.
내가 나온게 작년 8월 이니까, 거의 1년을 더 그렇게 살았을거란 생각에, 진짜 수고 많았다고 얘기해줬다.
요즘들어 부쪽 IT 개발자들의 현실에 대해서 미디어를 통해 표현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어쩔 수 없는것인가? 라고 치부하기엔 그것을 감당해야할 개발자의 부담이 너무 크고 어깨가 너무 무겁다.
그 회사는 태생적으로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진화 과정에서도 개선되지는 않고, 오히려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간만에 둘이 술먹으며 즐거웠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인규한테 전화가 와서 인규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더 가졌다.
자리를 옮기면서 비타500 을 사서 갔다.
보자마자 "비타500, 오랜만이다? 너 없으니까 안먹었었는데~" 이러고 있다.
그나마 아침보다는 붓기가 빠진 인규 얼굴, 그래도 보기가 참 안스럽다 -_-;;...
내 소개로 그 회사에 가게 된건데 나는 먼저 발빼고 비교적 잘 살고 있지만, 인규는 여전히 개고생을 하고 있으니,
인규는 분명 내 탓이 아니라고 하나, 그래도 같이 일했던 친구로서 마음이 불편한건 사실이다.
지도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불보듯 뻔하기도 하고...
별로 힘주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빨리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며칠전에도 종합검진 받았다 하는데, 아무쪼록 건강이나 해치지 말고, 적당히 눈치 보며 설설 일하다가 마무리 하길 바란다.
인규는 조낸 고지식하고 책임감만 앞서서 문제다. 븅신새끼.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Tuesday, July 10, 2007
비타500, 오랜만이다?
Monday, July 02, 2007
잘 한 짓일까?
주식을 시작했다.
주위사람들이 다 하길래, 호기심에 기웃 거리다가 믿을만한 소스를 얻어 시작해 버렸다.
은행가서 증권 계좌 만들고, 증권사에 계정 만들어서 시작했다.
현재 현금이 30만원 밖에 없기에, 모두 주식을 사버렸다.
주식하는 사람들 보면 주식 모니터링 하는 클라이언트를 조그맣게 띄우고 항상 보고 있다.
때론 멍하니 앉아 모니터만 보고 있다던가...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원래 친구한테 밥살때 5,0000 원은 아깝지 않지만, 고스톱 치면서 1,000 원 잃는 것은 뼈속까지 속상한 법인데,
나 역시 모니터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
믿을 만한 소스이긴 하나, 그것도 후가 되봐야 아는것일진데...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자마자 하락세"는 역시 내게도 적용이 됐다.
이제 채 며칠이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다지 큰 돈은 아니지만, 이후 나의 재태크와 관련하여 어떤 추이를 보일 것인지 심히 기대되고 걱정된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는 절대로 주식에 손대지 마라"라고... -_-;;...
잘 한 짓일까?
담배랑 똑같다.
누군가 담배를 핀다고 하면, 담배피는 사람은 피지 말라고 한다.
주식도, 누군가 주식을 시작한다 하면 주식하던 사람들은 다 하지 말라 한다.
자신들도 끊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Monday, June 25, 2007
세번째 지리산
내가 왜 그랬을까? 힘들다는걸 잘 알면서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갔다 온걸까?
...
갑형님과 승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산에 가본지도 꽤 됐고, 또 주말에 바람도 쐬고 싶었고, 뭔가 정리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또 간만에 16기가 함께 하는 자리이기에 기분좋게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제작년 지리산 종주를 했을때를 기억한다.
정말 무슨생각에서였는지 발목 보호도 안되는 운동화에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이 그냥 쫄래 쫄래 갔다가 완전 고생했었다.
다른거 보다, 무릎이 나가서 내리막길에서 엄청 고생했던걸 기억한다.
이번엔 준비를 좀 했다.
등산화도 하나 장만하고, 스틱도 준비했다.
퇴근을 하고 승윤을 만나 용산역으로 가니, 곧 갑형님이 왔다.
용산역 이마트에서 함께 먹거리 장을 보았다.
준비부터 시작해서 제작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세석산장에서 그저 그런 밥을 해서 먹고 있을때, 거의 대부분이 진한 냄새 물씬 풍기며 맛있게 먹던 고기가 가슴 한켠에 응어리져 두고 두고 날 괴롭게 했다.
때문에 이번엔 고기도 샀다.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기차를 타고 출발한다.
아직은 기운이 철철 넘친다. 정신도 말짱해서 잠도 잘 안온다.
22일( 금 ) 저녁 10시 50분 차를 타서 23일 오전 3시 30분에 구례구에 도착했다.
구례구에서 버스터미널에 잠깐 들린뒤 성삼재로 버스를 타고 갔다. 아직 어둡지만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산을 오르기 시작할때부터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이번엔 얼마나 힘들까?
이번엔 준비 좀 했다 싶은데 무릎은 괜찮을까?
장마라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2년 동안 나의 체력을 나이와 반비례하여 분명 떨어졌을텐데, 괜찮을까?
이런 저런... 겁만 많아진듯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런 저럭 생각않고 그냥 좋을 생각으로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산행은 시작되고 장마 덕분에 경치는 잘 보지를 못했다.
오전에 비는 오지 않았으나, 잔뜩인 구름덕에 뭔가를 보고 느끼기엔 힘들었다.
더군다나 오후부터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서 정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고 구름속에서 비를 맞으며 갔다.
이때는 사진 조차 찍을 수도 없었다.
특히나 장마 덕분에 비가 온다는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난 왜 아무런 대책을 하지 않았을까?
비가 올 수록 무거워 지는 옷 덕분에 몸은 더욱 둔해지고, 산장에 도착하여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을 생각에 버티었건만 베낭속까지 모두 젖어 무엇으로도 갈아입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몸과 옷에서는 비와 땀에 쩔은, 11년만에 맡아보는 통선대 냄새가 났다.
몸과 옷에서의 냄새를 맡는 순간, 그 냄새에서 연상되는 기억이 딱 통선대라니... ㅋ 진하고 강한 그 통선대 냄새...
난 준비성이 없다. 귀찮아하는걸까? 좋게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는 모험 및 닥치는 상황에서의 돌파를 즐긴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비 덕분에 질퍽 미끄러운 길과 둔해진 몸으로 고생을 했다.
항상 몸이 젖어있기에, 비바람이 거세진 산장의 취사장에서는 더욱 추웠다.배가죽이 등에 닿고 허기가 몰려와 손발이 떨려야 하는게 정상인데, 몸이 천근만근에 추워서 그런지 그냥 막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무겁게 싸온 고기를 승윤은 포기하지 못하기에...
귀찮지만 준비해온 고기와 음식들로 배를 채우니 기분은 좋아졌다.
두사람은 소주도 한잔씩 하고,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이렇게 셋이 모여본게 언제 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청년회에 있으면서 내게 큰 의지가 되어주는 두 사람이 난 참 좋고 고맙다.
난 산장에서 잔적이 없다.
이곳 지리산에서도 설악산에서도 난 산장에서 잔 적이 없다. 늘 취사장에서 잤었다.
예약을 못하거나 늦게 가거나 자리가 없거나 등등의 이유로...
이번엔 갑형님이 예약을 잘해놔서 산장에서 잘 수 있었다.
산장에 좋으면 얼마나 좋고 따뜻하면 얼마나 따뜻할까라고 생각했었으나, 정말 좋았고 정말 따뜻했다.
만일 이런날 밖에서 잤더라면 난 아마 얼어 뒈졌을지도 모를일이다. 참 다행이다.
젖은옷도 다 말리고 아주 따뜻하고 편하게 산장에서 푹 자고 일어났다.
남들은 모두 새벽 4,5 시에 일어나 천왕봉으로 향하는데, 우리는 6시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어제 밤까지만해도 그칠줄 모르게 거세게 오던 비는 아침에 조용해 지더니, 이내 그쳤다.다행이도 이전처럼 무릎이 아프거나 근육이 땡긴다거나 하는건 없었다.
역시 장비의 힘은 대단하다!
비는 그쳤으나,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해가 떴다가 먹구름이 쭉 몰려왔다가 등등 호화찬란한 날씨쇼를 하고 있었다.
장터목산장까지는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으나, 천왕봉에 가서는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희뿌연 구름속에 있었다.우리가 많이 늦었는지 우리가 천왕봉에 갔을때는 아무도 없었다.
지리산에 3번째인 갑형님과 나, 그리고 첫번째인 승윤, 반응이 다르다.
아직 젊은 승윤은 좋다고 하고, 갑형님과 나는 이제 산을 끊기로 한다. -_-;;...
너무 힘들었다.
갑형님은 제작년까지 괜찮았던 무릎에 신호가 왔고, 난 몸은 괜찮으나, 비 덕분에 완전 힘들었다.
제작년 산행을 통해, 등산화와 무릎 보호대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이번엔 등산복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중산리로 내려오는 지겨운 내리막을 끝으로 산행을 마무리 했다.
그 시점에서 당장은 다시는 산에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힘들다는걸 잘 알면서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갔다 온걸까?갈때는 그래, 힘들기 위해 산에 가는거야. 라고는 하지만, 막상 끝내고 나서 당장은 힘든거만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재밌고 좋은 기억만 산행의 사진들을 보며 또 후에 가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사진을 많이 못찍어서 아쉽다.
갑형님과 승윤과 함께 산행해서 너무 좋았다.
거의 4년을 알고 지냈으나, 조금씩 서로가 바빠지면서 제대로 술자리 한번 갖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2박 3일동안 산행을 하면서 옆에 꼭 붙어있고 얘기도 하고 함께 힘들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해지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렬히 생긴다.
진주 원지에서 저녁 6시 40분에 출발해서 남부터미널에 10시에 도착하여 12시 까지 뒷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지금은 다리 근육도 땡기고 졸립지만,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아니 정말 같이 갔어야 했다라는 생각이 크다.
사진 더 보기
Tuesday, June 12, 2007
부산 - 이렇게 좋았던가?
사실, 이들과 월요일 월차를 함께 쓰기로 하지 않았다면, 아마 힘나씨 결혼식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은 내게 너무 멀다 -_-;;... 월요일에 다 함께 월차를 내기로 하고, 일요일, 월요일에 아주 재밌게 놀 생각으로 부산에 갔다.
이전날 한마당 행사와 뒷풀이의 여파로 거의 모두들 아침이 지나기 까지 입에서 술 냄새 풀풀 나도록 술도 깨지 않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서 수경이가 빌린 카니발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중부 - 영동 - 중부내륙 - 경부 - 대구부산간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에 갔는데, 이전 처럼 경부만 쭉~ 타고 가는거 보다는 그나마 덜 지루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단축된다는 느낌은 사실 받지 못했다. 일찍 출발하여 일찍 도착했기에, 신부가 대기실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힘나씨... 살이 많이 찌셨더군요... -_-;;...
그래도 밝은 힘나씨 얼굴은 그대로 이다.
결혼식을 끝내고, 부폐로 밥 먹으러 갔는데, 정말 영 꽝이었다. 이렇게 먹을것 없고 맛 없을 수가...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이제 해운대로 출발한다.2년 인지 3년인지 보지 못했던, 뽀름이에게 부산 가이드를 부탁했다.
2002년에 615 중앙문예단 하면서 알게된 부경 후배인데, 친해져서 종종 연락하고 지냈다.
서울오면 만나기도 하고...,
내가 부산 가서 만난건 처음이다. 착한 뽀름이 기꺼이 나와서 우리의 가이드를 해주었다.
해운대는 몇번 간적이 있는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서 일까? 날도 좋아 사람들도 제법 많았고, 또 무엇보다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해운대 바다는 왠지 더럽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말 깨끗했다.
해운대 앞에서 음료수 마시며, 잠깐 게임도 하고, 승윤은 물에 빠지기도 하고,.. 그 뒤 뽀름이가 안내해주는 대로, 누리마루로 갔다.지난해 APEC 을 하면서 만들게 된 부시를 비롯한 정상들의 산책로인데, 정말 잘 해놓았다.
바다 앞 깍아지른듯 절벽위에 나무로 길을 만들었는데, 정말 산책하기 좋다. 이 근처 살면 하루에 한번씩 오면서 꼭 바람쐬며 산책하고 운동하고 싶어질테다.
부시가 한번 왔다 가니까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로 바뀌는구나.
다음 또 보름의 인도를 받아 광안리로 가서 회를 먹었다. 회는 맛있었다. 회를 사고 먹으며 수경이가 버럭 하긴 했으나, 그럭 저럭 잘 넘어가서 즐겁게 회와 술을 먹었다.
나는 모든이의 이동을 책임지기에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 사실 이럴때 약간, 아주 약간의 술이 땡기는건 사실이다.
술은 결코 맛이 없으나, 그냥 그 분위기에 동참하고픈... 아바이, 왜 나를 이렇게 낳으셨습니까 -_-;;...
부산에서 운전을 해본건 처음인데, 길이 참 어렵다. 나는 제법 길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길이 워낙 꼬불꼬불에 언덕도 많고, 비스듬한 길도 있어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왔던 길이 어딘지 잘 파악이 되질 않는다.
뽀름이 말로는, 한국전쟁당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오면서 집부터 먼저 지어지고 도로가 나서 그렇다는데...
내일 월차를 내지 못한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부산역으로 갔다.
승윤은 술 더 먹다가 내일 새벽에 올라가기로 했는데, 아침에 올라가는 차가 모두 매진이라 결국 올라가게 됐고, 해서 결국 회장님과 나, 그리고 영숙이 수경이가 남았다.
해운대가 바로 보이는 콘도에 방을 잡고, 준비해온 양주를 꺼내고, 안주를 사서 해운대가 바로 보이는 베란다에 식탁을 옮겨 자리를 만들었다.
파도 소리 좋고, 물 깨끗하고,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그야 말로 최고의 기분전환을 위해 최고의 상황이 갖추어졌다.
뇌가 다 편해지는거 같았다.
내 생각같아서는, 재밌고 즐겁고 떠드는 얘기 하고 싶었으나, 바보 같은 권수경 첫 주제를 한마당으로 잡는 바람에 대화의 소재는 대개 청년회 얘기였다.
이런 저런...
그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회장님은 힘들고 고민이 있어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얘기이다.
나 빛장할때 그랬다. 나 힘들고 지치고 고민되는데, 누구 한테 얘기 할 사람이 없었다. 바보 같은 나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의욕만 앞어서 일을 그르치는거 같고 주위에서는 안도와주는거 같고...
막 그랬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내 옆에 내 얘기를 들어줄 친구가 한명만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것이라 생각했었다.
회장님께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회장님의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쳐줄 친구 한명이리라 생각된다.
수경아, 네가 그리 하렴... ㅋㅋ 꼭 !!!
회장님은 결국 먼저 뻗으시고, 수경, 영숙, 나 셋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학교때 얘기, 청년히 들어와서 얘기, 또 앞으로의 얘기... 내가 뒷풀이를 잘 안해서 이들과 이렇게 얘기 나누어봤던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참 오랜만에 얘기해 본다.
진작 진작 얘기도 좀 하고 그럴걸...술자리를 정리 하고 완전 뻗어서 잘 잤다.
아침에 라면을 끓여 먹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월차까지 냈는데, 이대로 서울로 올라간다면, 아쉽지 않은가?
문경새제에 들려서 사진도 찍고, 계곡에 발도 담고 왔다.푸르고 높은 하늘, 뜨거운 햇볕을 파랗게 이쁘게 가려주는 시원한 나무 그늘, 그리고 질세라 더욱 시원한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앉아있으니, 더이상 부러울게 없었다.
비록 하루 반나절동안의 짧은 여행이지만, 이렇게 제대로 기분좋게 즐겁게 편하게 돌아다녔던것이 언제 였나 싶다.
몸은 천근만근 정말 피로하나, 머리는 마음은 시원하게 뻥 뚫고 온듯하다.
그리고 너무도 이쁘게 우리를 가이드 해준 뽀름에게 너무 고맙다.
서울에 올라오면 100배로 더 잘해줘야지! =)
...
이렇게 잘 놀고 왔으면, 탄력받아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다시 또 놀러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다.
사진 더 보기
Wednesday, June 06, 2007
6월 5,6일 보라빛 동문회
매년 6월 5,6일이면 하게 되는 우리 동아리 동문회.
5일 퇴근하자 마자 학교로 달려갔다. 재학생들만 있고 아직 아무도 안왔으나,
동아리방에 가면 사실 아무도 없어도 반나절은 재밌게 놀 수 있을거 같다.
가면 늘 있는 악기와 낙서장과 옛 앨범들 그리고 쉴 수 있는 쇼파...
다들 바쁜지 제대로 된 동문회가 시작할때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해를 거듭할 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못한다.
다들 각자의 생활이 있고, 하루 시간내기가 힘들어지면, 더군다나 여자들은 아가들도 있기에 점점 힘들어 진다.
몇년동안 공부한답시고 세상과 단절해 살던 현수가 나타났다.
정우랑 셋이 자취하면서 학교다닐적의 단짝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강현수는 정말 변한게 없다. -_-;;...
노래도 춤도 그대로 이고 말하는것도 똑 같다.
나를 오랜만에 본 사람도 날 보고 그렇게 생각할까?
그리고 늘 꾸준히 자리를 지켜주시는 우리의 진우형님... 내가 아는 사람중 기타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이기도 하고, 훤칠한 외모에 늘 카리스마 있는 이야기로 관중을 압도하는 우리 진우형님..
아주 고학번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학교를 찾아 우리 애들을 가끔 돌봐주신다는데... 존경스럽다. ㅋ
밤 11시 정도가 되서야 제대로 된 동문회가 시작됐고, 아침 7시 까지 술을 먹었다.
역시... 대학생들 페이스 따라가려니 몸이 아주 힘들다 -_-;;...
그래도 쭉 즐거웠다. 끊이지 않는 재밌는 얘기들, 재학생들의 재롱, 선배들의 공연...
노래 동아리이다 보니, 노래도 많이 했는데, 하도 오랜만에 기타를 치니 팔도 저리고, 굳은살 없는 손가락 끝도 애리더라.
신나게 멋진 노래를 할때 만큼 흥분되는 일도 없는데, 너무 오랫동안 안했나 보다 -_-;;...
이제는 동문회를 좀 바꾸어야 할거 같다.
예전에 대부분이 그럭저럭 젊을때는 괜찮았으나, 이제는 올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이 더욱 많아 지고 있다.
1박 2일 과 학교라는 장소는 충분히 땡기지만,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면 굳이 고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냥 어디 한적한 공원에서 딱 하루만 날 잡아서 가족을 동반한 모임이 진행될 수 있게 하여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그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다음 동문회는 이렇게 한번 준비해 봐야 겠다.
학교 갔다가 아주 아주 재미난 장난감을 얻게 되었다.
아주 멀쩡하나, 사용할 수 없는 건반을 내가 잠시 빌리게 됐다.
KORG N364 인데, 요즘의 잘 나가는 TRITON 급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놀기엔 충분한 신디사이저이다.
당분간은 또 요거 가지고 노니라고 재밌을법 하다.
Sunday, June 03, 2007
눈부처
눈부처가 뭔지 아세요?
그러면 지금 내 눈동자를 들여다 보세요.
눈동자 안에 누가 있지 않아요?
그걸 눈부처라고 부른대요
상대방의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서로의 눈부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몰라요.
사실 다른 사람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것만큼, 어색한 것이 없거든요.
그렇게 바라보고 오랜 시간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침묵속에서도 편안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소중한 사이가 된거에요.
갑형님이 뜽금없이, 승윤과 나를 채팅창으로 부르더니 해준 얘기이다.
갑형님 가끔 센치해하거나, 문학적인건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평일 낮시간에 술도 안먹고 이런 얘기를 채팅으로 하고 휑~ 가버리시다니. ㅋ
"눈부처"... 어감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그 뜻은 참으로 의미 있다.
순우리말 치고 이렇게 어감과 뜻이 매치되지 않는 말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만,
상대방에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란... 옛날 사람들도 무언가 로맨스를 만들기 위해 이런 말을 만들었을지도... ㅋ
사실, 그냥 상대방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도 될것을 이렇게 명사로 따로 만들어 놓았을정도면 옛날 옛적에 뭇 연인들에게 자주 애용되던 단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정말 친한사이라면, 오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어야 비로소 이사람이랑 정말 친해졌구나 가까와졌구나를 느끼게 된다.
어색한 사람이라면, 조금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고 다음 대화 소재를 찾아야 하는것이 습성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눈부처를 편히 볼 수 있다면...
너무 느끼한가? -_-;;...ㅋ
눈부처 : 상대방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 - 순우리말
Thursday, May 24, 2007
아! 옛날이여~
'93 양사이, '94 최사이, '95 정우 용빠이 4명이 거의 10년만에 다시 보았다.
어리버리네 집에 놀러갔다가, 세훈형님이 우리 동네 사신다는걸 우연히 알게 됐고, 해서 연락하게 된뒤 선형님까지 연락해서 4명이서 보게 됐다.
세훈형님과 정우는 회사가 역삼역이라 가까이에 있는 내가 그리로 가고 신촌에 있는 선형님도 오게 됐다.
지금은 2아들의 애비로 남들처럼 회사 생활 하니라 정신 없는 세훈형님,
늦깍이 공부로 아직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최선형님,
돈좀 벌어보겠다고 새롭게 보험일을 시작하게 된 김정우,
그리고 나
95년 1학년때 포도나무집에 모여 수퍼에서 파는 포장 족발과 진로소주 먹으면서 시작했던 우리 인연이 서로 갈길이 다르고 바쁘다는 이유등으로 보지 못하다가 이렇게 다시 모였는데, 모였다는거 자체만으로 서로 얼굴 보았다는것 만으로 어찌나 반가운지 모른다.
할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예전일을 회상하기도 하고 요즘 서로의 근황을 얘기도 하고, 또 연락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얘기등...
역시 재미있는건 서로의 옛날 이야기 들이다.
공연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 댓거리할때의 얘기들, 그 유명한 설악산 모꼬지의 기억들, 오월계단에서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 자리를 잡고 해뜰때까지 술먹으며 한 얘기들이며, 서로의 과거연애에 대한 얘기나, 또 같이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
잊고 있었는듯 하나 서로의 모습에 다 기억이 남아있다.
서로 모두 변하지 않았다는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징그럽긴 하나, 남자들끼리 얼굴 만져보면서 피부조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능청을 떨기도 한다.
아! 옛날이여~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또 그렇게 살거 같다.
더 잘하고 싶기도 하지만, 더 잘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그때가 그립다!
Head First , Design Patterns
한동안 전공서적 읽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회사도 다니고 하니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회사 동료에게 책을 하나 추천 받았다.
Design Pattern 에 대한 책인데, 예전에 GoF 의 Design Patterns 읽다가 재미없어서 미처 다 읽지 못했고, Design Pattern 이라 하면 그냥 이래 저래 듣고 보아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아는것 하나 없고, 사용하는건 그저 Singleton 하나 뿐이었다.
뭘 읽을까 결정도 못했고, 뭐 어짜피 회사돈으로 사는거니 ㅋ 별 생각없이 사게 되었는데...
전공서적이라 하면 의례 딱딱하고 건조하며 재미없고 지루해야 맞을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시작부터 달랐다.
내용의 표현에 중점을 둔 책이 아닌, 내용의 전달에 중점을 둔 책으로써 어떻게 하면 읽는이로 하여금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여 만든 책이다.
Head First Series 는 처음 읽어보는데, 책에 그림도 많고 글이 대화체라 부담없이 술술 읽어내려갈 수가 있다.더군다나 각 그림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서문에 있는 오른쪽 그림을 보고 한참을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림들이 어찌나 해학적이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전공서적을 읽으면서 웃었던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전공서적을 읽으며 재밌을 수 있다는건, 웃을 수 있다는건 참 고마운 일이다.
요즘 회사에서 1시간 정도씩 이책을 읽고 있는데, 아직 채 몇장 읽지 못했지만, 아마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거 같다.
요즘 지하철에서 보고 있는 아키텍트 이야기는 읽을 수록 공감하지만 우울해 지는 반면 Head First , Design Patterns
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거 같다.
학부때 해보고 해보지도 않았던, 해볼 생각도 안했던, 염두해 두지도 않았던 JAVA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고 있다.


